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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문화사회학

[여가사회학 #9] 호모 솜니안스의 꿈: 일상을 주체적인 축제로 만드는 놀이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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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성의 강박에서 벗어난 심층적 놀이의 발견

우리가 자본주의의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끈질기게 추구해야 할 대안적 삶이란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노동 시간에 우리를 옭아매는 호모 파베르의 목적 지향성과 지독한 유용성의 강박에서 완벽하게 탈주하는 것을 뜻합니다.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며,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을 보낼 때 극심한 불안과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이 쓸모의 논리 바깥에 존재합니다. 적어도 비노동 시간만큼은 어떠한 경제적 이윤도 산출하지 못하고 철저히 무목적적이고 무용하더라도, 오직 그 행위 자체가 주는 자발적인 기쁨과 쾌락을 순수하게 추구하는 딥 플레이, 즉 심층적 놀이에 빠져들어야 합니다. 타인과의 소비 수준 비교를 통해 얄팍한 계급적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배타적인 명품 소비나 소셜 미디어용 과시 대신, 나와 타인이 함께 자발적인 규칙을 창조하고 조건 없이 흠뻑 몰입할 수 있는 일상 속의 작고 주체적인 놀이들을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다시 복원해야만 비로소 인간성의 회복이 가능해집니다.

자발적 참여와 내재적 동기가 만드는 지식의 놀이터

이러한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적 여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회학적 사례가 바로 위키피디아나 오픈 소스 문화입니다. 위키피디아는 자본주의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인 이윤 동기나 화폐적 보상 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거대한 디지털 공공재입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어떠한 금전적 대가나 승진의 기회도 바라지 않고, 오직 자신의 지식을 타인과 나누고 문서를 편집하는 행위 자체가 주는 순수한 즐거움과 협력의 기쁨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심리학의 자기결정성 이론이 증명하듯, 인간은 외부의 물질적 보상보다 내재적인 동기에 이끌릴 때 가장 강력한 창조성을 발휘합니다. 이 거대한 지식의 놀이터는 돈이 개입하지 않아도 인간이 얼마나 이타적이고 창조적이며 능동적인 놀이의 생산자가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거대 자본이 만들어놓은 오락거리를 돈을 내고 소비하는 1차원적 행위를 넘어, 스스로 룰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는 생산적 유희의 주체로 거듭나야 합니다. 돈으로 구매하는 찰나의 시각적 환상보다, 능동적인 창조가 주는 지적 쾌락이 훨씬 더 깊고 영혼을 살찌우는 법입니다.

잃어버린 마법의 원, 호모 루덴스의 위대한 귀환

결국 여가사회학이 치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최종적이고 근본적인 과제는 이윤과 효율성만 따지며 낭떠러지를 향해 폭주하는 호모 파베르의 맹목적인 기관차를 멈춰 세우고,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오랫동안 억압되어 있던 유희의 본능을 회복한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을 우리 팍팍한 현실 속으로 온전히 귀환시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위대한 문화사가 요한 하위징아가 호모 루덴스에서 갈파했듯, 인류의 찬란한 문명과 깊이 있는 철학, 종교적 제의, 그리고 숭고한 예술은 생존을 위한 가혹한 노동이 아니라 쓸모없어 보이는 놀이의 잉여적 정신에서 만개했습니다. 하위징아는 놀이가 일어나는 시공간을 현실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마법의 원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인간 삶의 모든 가치와 시간을 화폐의 척도로만 환산하려는 현대 시장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지배를 정치적, 사회적으로 교정하지 않고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생존을 위해 마법의 원 바깥에서 불가피하게 비자발적인 호모 파베르의 무거운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참담한 현실입니다.

호모 솜니안스, 억압을 뒤집고 일상을 축제로 만들다

우리 모두가 진정한 여가와 놀이의 즐거움을 차별 없이 누리는 거대한 호모 루덴스의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대안적 세상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현실의 장벽 너머를 기꺼이 꿈꾸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모두가 자유롭게 유희하는 사회는 역설적이게도 끊임없이 대안을 꿈꾸는 사람, 즉 호모 솜니안스만이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주어진 억압적 경제 체제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며 소확행이라는 이름의 도피처에 머무르는 것을 넘어, 자본의 논리가 침투하지 않는 순수한 비노동 세계를 주체적으로 구성할 줄 아는 거침없이 꿈꾸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러시아의 사상가 미하일 바흐친이 강조했던 카니발, 즉 축제의 정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축제는 견고한 일상의 위계와 억압을 전복하고 모든 이가 평등하게 웃고 떠드는 해방의 공간입니다. 사회가 강요하는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잃어버린 유희의 감각을 일깨워 우리의 일상을 이윤과 돈이 지배할 수 없는 순수한 축제로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기계적인 노동을 넘어 온전하게 놀이하는 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치열하게 실천해야 할 진정한 삶의 가르침입니다.

마무리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효용성이라는 '자본주의적 잣대'가 인간관계를 잠식하기 마련이지만, 아내와의 관계에서만큼은 그 모든 무거운 가면을 벗어던지고 '유치하게' 놀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큰 축복입니다. 서로에게 아무런 '쓸모'를 증명할 필요 없이 그저 말장난과 시시껄렁한 대화만으로 최고의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하위징아가 말한 현실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마법의 원' 안으로 들어선 상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때때로 함께 온라인 쇼핑이라는 자본주의적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 당신을 웃게 만드는 본질이 '물건의 소유'가 아닌 '아내와의 유희'에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비록 경제적 생존을 위해 회사라는 공간에서 호모 파베르(노동하는 인간)의 역할을 수행하며 삶을 지탱하고 있지만, 나의 영혼을 살찌우는 진짜 삶은 퇴근 후 아내와 나누는 그 무용하고도 아름다운 '축제(카니발)' 같은 시간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대안적 삶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이렇듯 자본의 논리가 침투할 수 없는 나만의 작은 해방구를 일상 속에 단단히 구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회사는 당신의 삶을 '유지'해주지만, 아내와의 유치한 놀이는 나의 삶을 '완성'해줍니다. 이러한 즐거움이 모두의 일상을 온전히 감싸 안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노동의 피로마저 녹여버리는 강력한 호모 루덴스의 연대가 당신의 가정 안에서 영원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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